2024 개인전 "한 그루" 전시 글 中
한 그루
사람은 마치 숲과 같다.
나무가 모여 숲이 만들어지듯이,
사람 또한 기억이 모여 한 개인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나의 숲은 어둡고 캄캄한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같은 곳을 매일 맴돌고 있다.
이 불안정한 여행 속에서 지쳐가던 나는 용기를 내어 지나온 길을 더듬어 가기로 했다.
그 길의 여정 속, 나는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지친 나를 위해 넓은 품으로 다정하게 보듬어주는,
행여 내가 길을 잃을까 몰래 쳐다보고 있던,
그동안 평범한 나무인 줄 알고서 지나치고 있었던 특별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숲이 무섭지 않았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내 세계가 더 넓어짐을 느꼈다.
그들과의 여행으로 나는 미처 보지 못했던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반짝이는 밤하늘은 어찌나 예쁜지,
또 높은 곳에서 바라본 나의 숲은 얼마나 알록달록한지.
나는 나의 숲이 얼마나 큰지,
하늘은 얼마나 높고 드넓은지 궁금해졌다.
두렵지만 그들과 함께라면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의 특별한 친구들과 숲을 여행하고 있다.
내 친구들의 이름은 한 그루다.
별이 수 놓인 밤하늘, 따뜻한 빛줄기 아래에서
우리는 별을 헤는 여행을 하고 있다.
과거를 되새기는 나의 강박 습관을, 기억을 매개체로 표상(表象)하여 긍정적인 변화 과정으로 시각화하였으며 이를 서사화(敍事化)하고 있다. 서사화란 이야기나 사건 따위를 변화 과정에 따라 재조직하여 서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기억의 서사화 방식이란 내가 본인의 이야기를 서사로 인식하고 이미지로 서술하는 작업 방식이다.
서사로 풀이되는 나의 강박은 이전의 특정 기억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미성숙한 자아를 확립하기 위한 자기 고백의 일환이었으나, 기억의 재현으로 인해 당시 불안정한 감정 또한 재생되면서 내면의 불안으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강박을 본인을 이루는 하나의 특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변화하는 과정을 서사화로 나타내었다. 나의 회상은 모든 것에서 동 떨어져 있는 숲의 한 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기억을 회상하고 이미지를 계속 반복하여 만들어진 숲은 마치 보안용 감시카메라(CCTV)와 같다. 보안용 감시카메라(CCTV)는 24시간 특정 장소의 모습을 촬영, 녹화하는 카메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감시하는 것 같은 일방적인 숲의 구도가 내가 생각하는 회상의 이미지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으나 늘 곁에 존재한다는 것이 본인의 기억의 존재 형태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방적인 소통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개체들을 등장시키며 상호 소통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점진적인 태도를 취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작품 변화에 따른 나의 심상도 점차 바뀌어가며 여러 변화 단계가 두드러지면서 기억의 서사화를 실현해나간다. 나는 보다 적극적으로 기억의 서사화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특정 기억을 되새기며 기억을 객관화시키는 채색 과정을 시도한다.
특히 작업 과정에서 드러난 기억의 실재는 색채로 하여금 초기의 기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나는 기억의 실재를 오롯이 밝히기 위해 기억을 재구성한다. 따라서 형상을 통해 드러난 기억의 실재는 나의 특성에 의한 반복의 성격을 지녔으나, 변화의 필요성에 비롯한 새로운 숲의 형태 내지 생명체로서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한그루' 라는 명칭을 붙였으며, 기억의 특성을 구체화하고 그들과의 상호소통을 통한 과거와 현재, 자아의 조화를 이뤄나가는 서사를 그려낸다. 과거와 현재의 동행을 통한 미래라는 불분명함을 향해 걸어나가는 용기의 단계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리고 나의 정신적 면모의 변화들을 이미지로 온전히 재구성하는 것이 내가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이다.
결국 내가 이 서사를 통해 말하고자 함은, 작은 용기의 첫 걸음이 불러온 긍정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는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나의 용기가 흘러가기를 바라며, 두려움에 찬 뒷걸음질 또한 용기와 변화의 시작임을 말해주고 싶다.